마법이 일어날 때 2부

(1부에서 계속)

1930년대는 재앙이었다.

1932년에는 거의 4분의 1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었다. 주식시장은 89% 폭락했다.

그 두 가지 경제적 사건은 1930년대의 주요 관심사였고, 그래 마땅했다.

하지만 1930년대에 대한 다른 이야기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역사상 가장 생산적이고 기술적인 진보를 달성한 10년이었다는 것 말이다.

당시 사람들이 해결한 문제의 숫자와 물건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아낸 방식들을 보면, 1930년대 이후 세상이 왜 그렇게 번창했는지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1930년대의 총요소생산성(생산량 증가분에서 노동 증가에 따른 생산 증가분과 자본 증가분에 따른 생산 증가분을 제외한 생산량 증가분)은 그 이전이나 이후에 볼 수 없는 수준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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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알렉스 필드는 이렇게 말한다.

1941년, 미국 경제는 1929년에 비해 거의 40%나 생산량이 높아졌는데, 그 가운데 노동 증가나 자본 증가분에 따른 증가는 사실상 없었다. 거의 모든 시간당 생산량 증가는 [1930년대]의 기술과 조직의 발전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 기간 동안 일어난 몇 가지 사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그때 기술과 조직 발전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딜정책의 목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치 못한, 장기적으로 경제의 연료가 되는 몇 가지 결과를 낳았다.

자동차. 1920년대는 자동차의 시대였다. 미국 내에서 운행 중인 자동차 대수는 1912년 100만 대에서 1929년 2,900만대로 급증했다.

하지만 도로는 달랐다. 1920년대에는 도로 건설 속도보다 빠르게 자동차가 팔려나갔다. 놀랍도록 참신한 자동차들이 등장했지만, 유용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1930년대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공공 사업국이 출범해 도로 건설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도로 건설 지출은 1920년 GDP의 2%에서 1933년 6% 이상(현재는 1% 미만)으로 증가했다. 고속 도로국은 프로젝트가 얼마나 빨리 시작되었는지 이렇게 말한다.

1933년 8월 5일 유타에서 법에 따른 첫 고속도로 건설이 시작되었다. 1934년 8월까지 16,330마일의 새로운 도로 사업이 완성되었다.

역사학자 로버트 그로돈은 이렇게 말한다.

1930년대는 조지 워싱턴, 골든 게이트 및 베이 브리지스 등 다차선의 공학적 경이로운 건축물과 더불어, 코네티컷 남부의 메리트 파크웨이와 펜실베이니아 턴파이크 제1구간 등 다차선 유료 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 출입 제한 턴피크의 시작을 목격했다. 예상되었듯이, 이들은 전후 주간 고속도로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다. 1940년 기준, 미국 고속도로 시스템의 주요 노선도는, 대부분이 유료 고속도로가 아니라 교차로가 있는 2차선이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오늘날의 주간 고속도로 시스템 노선도와 사실상 동일한 모습이었다.

예를 들어, 펜실베이니아 턴파이크는 피츠버그와 해리스버그 간의 이동 시간을 70% 단축시켰다. 골든 게이트 브리지는 이전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로만 접근할 수 있었던 마린 카운티의 문을 열어줬다.

전국적으로 이런 다양한 종류의 도약이 진행되었던 1930년대는 미국에서 교통수단이 진정으로 꽃피웠던 10년이었다. 100년 동안에 걸쳐 건설된 철도망을 진정 효율적으로 만든 마지막 연결고리였으며, 전국을 연결한 최종적인 서비스를 만들어 냈다. 경제적으로도 엄청나게 유용했다.

전력화는 또한 1930년대에 급증했다. 특히 1920년대 도시 전력화에서 소외된 지방 미국인들이 더 혜택을 입었다. 뉴딜정책 하의 지방 전기국(REA)은 지방 농장 지대에 전력을 공급했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황폐화된 이들 지역에 10년 동안 유일하게 긍정적인 혜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미국 지방에서 전기가 공급된 주택의 수는 1935년 10% 미만에서 1945년까지 거의 50%로 증가했다.

헤아리기 어렵긴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우리 생애 일부와 조부모님들 생애 대부분 동안), 미국 내 상당 지역이 문자 그대로 어두운 보낸 것이 사실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REA에 관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전기는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닙니다. 이제는 틀림없는 필수품입니다. 전기는 우리의 집, 우리의 직장, 그리고 우리의 거리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전기는 우리의 교통수단과 공장 대부분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전기는 우리의 집을 밝혀주는 것만이 아니라, 무수한 방법으로 우리 가정에서 기꺼이 봉사하는 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전기는 주부들의 고된 일을 덜어주고, 열심히 일하는 농부의 어깨에서도 큰 짐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이유는 미국 가정과 농장에서 전기 사용이 확실히 뒤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의 일반 가정에서는 우리 미국이 사용하는 것보다 두 배의 전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탁기, 청소기, 냉장고가 나오면서 전기는 “기꺼이 봉사하는 하인”이 되었고, 여성들의 가사 노동 시간을 단축시켜, 노동 시장 참여를 늘려주었다. 반세기 이상 지속된 이런 추세는 20세기 성장과 양성평등을 동시에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었다.

1930년대의 두 번째 생산성 급증은 일반 시민들에게서 비롯되었다. 가격 대비 높은 가치를 얻어낼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렇게 최초의 슈퍼마켓이 1930년 문을 열었다.

(계속)

자료 출처: Collaborative Fund, “When The Magic Happens”

출처: https://steemit.com/ko/@pius.pius/gyau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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