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은행의 벽두 – 금융 제국 JP 모건 체이스의 역사 1부

IMAGE DISTRIBUTED FOR JP MORGAN CHASE - Jamie Dimon, JP Morgan & Chase Co. Chairman and CEO, discusses the impact of The Fellowship Initiative, Monday, June 23, 2014, at JPMorgan Chase Headquarters in New York. The expanded Fellowship Initiative enrolls young men of color in Chicago, Los Angeles, and New York City in a multi-year hands-on enrichment program that includes academic, social and emotional support. (Photo by Diane Bondareff/Invision for JPMorgan Chase/AP Images)

전조

JP 모건 체이스(JP Morgan Chase & Co.)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크며, 가장 유명한 금융 기관 중 한 곳이다.

1799년 뉴욕에서 설립된 이래,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성장해 왔다. 50개국 이상에 지점을 둔 글로벌 금융 서비스 회사가 된 JP 모건 체이스는 세계 최고 금융 브랜드 두 곳, JP 모건과 체이스가 결합해 탄생했다.

JP 모건 체이스는 투자 은행의 선두 주자로서, 소비자, 중소기업 및 상업 은행을 대상으로 한 금융 서비스, 금융 거래 처리, 자산 관리 및 사모 펀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 세계 유수의 많은 나라들의 수백만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지금으로 성장하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1,000곳 이상의 금융 기관들이 합해져 만들어졌다.

그중 유명한 은행으로는 JP 모건, 체이스 맨해튼 뱅크, 뱅크 원, 매뉴팩처러스 하노버 트러스트, 케미컬 은행, 퍼스트 내셔널 뱅크 오브 시카고 및 내셔널 뱅크 오브 디트로이트가 있고, 이들 각각은 금융 산업의 혁신과 미국 및 글로벌 경제의 성장의 긴밀한 관련이 있다.

시작

미국의 상업 은행은 독립 전쟁 직후 문을 열기 시작했다. 초기 미국 은행들은 자금 대출, 예금 보호 및 통화로 사용되는 지폐 발행을 통해, 미국의 경제 및 산업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뱅크 오브 뉴욕(Bank of New York)이 뉴욕시에 최초로 문을 연 상업 은행이었다. 그 후 경쟁자 없이 지내다가, 1799년 해밀턴의 정치적 경쟁자였던 미국 상원 의원이자 추후 부통령에 오른 애런 버(Aaron Burr)가 뱅크 오브 맨해튼(The Bank of The Manhattan Co.)을 열게 된다.

(애런 버)


JP 모건 체이스도 버의 이 신출내기 은행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된다. 뱅크 오브 맨해튼의 출발은 흔치 않았다. 처음 버가 이끈 뉴요커 그룹(해밀턴도 포함되어 있었음)은 주 정부로부터 로어 맨해튼 주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회사를 인가받았다.

버가 제출한 계획서에 따라 받아낸 인가서에는 회사의 초과 자본을 “미국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지 않는” 어떤 활동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버는 이 조항을 통해 은행을 설립했다. 상수도 회사 맨해튼(The Manhattan Co.)은 소나무의 속을 비워 수도관을 만들어 이를 로어 맨해튼 일대에 깔았고, 1842년 수돗물 공급을 시작했다. 하지만 뱅크 오브 맨해튼이 이 상수도 회사보다 더 오래 존속했고, 미국 내 선두 금융 기관 중 하나가 되었다.

성장

1800년대 미국이 확장되고 다변화 되면서, 전국에 속속 새로운 은행들이 세워졌다. JP 모건 체이스는 많은 초기 은행들과 역사적 관계가 있다. 1812년에 설립된 오하이오의 최초 은행 중 하나인 웨스턴 리저브 뱅크 (Western Reserve Bank), 1834년에 설립된 세컨드 스테이트 뱅크 오브 인디애나(The Second State Bank of Indiana), 1851년 일리노이에서 영업을 시작한 스프링필드 마린 앤 파이어 인슈어런스(Springfield Marine and Fire Insurance Co.)가 대표적이다. 스프링필드의 최초 고객 중 하나가 310달러를 예치한 에이브러햄 링컨이었다.

이 3개 은행 모두 2004년 JP 모건 체이스와 합병한 뱅크 원(Bank One)의 전신이었다. 1800년대 초반에는 은행 인가권이 개별 주에 있었고, 일부 주에서는 은행 인가를 아주 까다롭게 하거나, 여당이나 주지사의 정당 소속 설립자들에게만 해주곤 했다.

금융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점점 커지자, 기업가들이 은행을 설립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따라 일부 은행은 산업 또는 상업 분야에서 갈라져 나왔다. 뉴욕 매뉴팩처링(New York Manufacturing Co.)은 1812년 면방직 기계 제조업체로 출발했지만, 5년 후 은행으로 바뀌었다. JP 모건 체이스의 가계도에 자리 잡고 있는 매뉴팩처러스 하노버 트러스트(Manufacturers Hanover Trust Co.)의 전신이었다.

1823년 뉴욕 케미컬 매뉴팩처링(New York Chemical Manufacturing Co.)은 처음 그리니치 빌리지의 공장에서 의약품, 페인트 및 염료를 생산하는 회사였다. 이후 1824년 맨해튼은 초과 자본을 이용해 케미컬 뱅크(The Chemical Bank)를 설립했고, 1996년 JP 모건 체이스의 가계에 합류하게 된다.

19세기 중반

(당시의 지역 은행권)


남북 전쟁 직전인 1860년에 이르자, 미국 전역에 1,500곳이 넘는 상업 은행이 영업 중이었고, 약 7억 달러 상당의 대출이 행해져 있었다. 남북 전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니다. 당시 미국에는 통일된 국가 통화가 없었다. 대신, 개별 은행들이 은행권으로 지폐를 발행하고 있었다. 이 시스템 초기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다양한 은행들이 발행한 다양한 형태, 크기 및 색상의 은행권 7,000종 이상이 유통되면서, 비효율성과 혼란이 초래되었다.

1862년 연방이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해 “그린백(greenback)” 지폐를 발행하자 상황이 바뀌었다. 1863년 국가 은행법(National Banking Act)이 통과되었고, 미국은 연방 인가 은행과 주 인가 은행으로 이뤄진 이중 시스템을 채택하게 된다. 여기서 태어난 기관 중 하나가 1863년 연방 인가 번호 8번을 받은 퍼스트 내셔널 뱅크 오브 시카고(First National Bank of Chicago)였다. 이 퍼스트 내셔널은 1998년 뱅크 원의 지사로 편입된다.

(그린백)


법 시행 초기에는 소수의 은행들만 연방에 인가를 신청했지만, 1865년 연방 정부가 주 인가 은행들에서 발행한 지폐에 10%의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하자, 신청은 물밀듯이 이어졌다. 1868년이 되자, 주 인가 은행은 총 247곳이 남은 반면, 연방 인가 은행은 1,640곳으로 늘어났다.

주 인가 은행들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생각이었지만, 놀랄만한 전환이 일어났다. 주 인가 은행들이 지폐 발행 대신, 이자 지급 요구불 예금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예금)을 발명해 낸 것이다. 주 인가 은행들은 이 새로운 서비스를 한껏 활용하면서 다시 증가했고, 1894년이 되자 연방 인가 은행의 수를 앞질렀다.

오늘날까지 이 이런 두 가지 형태의 은행들이 영업 중이며, 다양한 규모의 은행들이 주, 연방 및 국제 시장에서 중소기업, 대기업 및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합하면서, 미국의 분권화된 금융 시스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남북 전쟁 이후 심각한 경제 침체기 10년 동안, 75세의 월스트리트 출판가 겸 은행가였던 존 톰슨(John Thompson)이 1877년 맨해튼의 방 하나 짜리 사무실에 체이스 내셔널 뱅크(Chase National Bank)을 설립했다. 링컨 정부의 재무 장관이자, 오하이오 주지사와 미국 대법원장을 역임한 샐먼 P. 체이스(Salmon P. Chase)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샐먼 P. 체이스가 그려진 1918년 1만 달러 지폐)


이 은행은 곧 존경받는 환거래 은행이 되었고, 20세기 초반에 대규모 기업 비즈니스를 개발하면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1930년이 되자, 자산 규모 27억 달러의 세계 최대 은행으로 발돋움했다. 1955년에 뱅크 오브 맨해튼과 합병해 체이스 맨해튼 뱅크(The Chase Manhattan Bank)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20세기 벽두의 금융

20세기 벽두의 금융은 오늘날과 여러 면에서 달랐다.

당시 주요 금융 규제 당국이었던 대부분의 주 정부들은 지점 설립을 금지하거나, 엄격하게 제한했다. 소형 은행들의 지점 개설을 인가하게 되면 대형 은행들과의 경쟁에 곤란을 겪게 될 우려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미국 은행 대다수는 1업소 은행이었고, 규모도 작았다. 1898년, 뉴욕시가 뉴욕 시티 은행에 뉴욕 내에 5개 지점 개설을 인가하면서, 은행 지점 개설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케미컬 뱅크의 전신 콘 익스체인지 뱅크(The Corn Exchange Bank)는 새로운 규칙을 빠르게 활용해, 4년 만에 12개의 지점을 개설했고, 곡물 상인 대출에 집중하던데서 벗어나 일반인들에게까지 서비스를 넓혔다.

(맨해튼에 처음 개통된 지하철)


1904년 뉴욕시에 지하철이 개통되자, 이 은행은 통근자들을 노려 지하철 노선을 따라 주거 지역에 지점을 열었다. 1913년 의회는 통화 공급을 규제하고 경제를 관리하기 위해 연방 준비 제도(Federal Reserve System)을 설립했다. 다년간 JP 모건이 비공식적으로 해오던 미국 중앙은행의 역할을 이제 연방 준비 제도가 공식적으로 이어받게 되었다.

Written by pius.pius
출처 : https://steemit.com/@pius.pi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