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 명의 경제학자에게 배우는 투자 교훈

세 명의 경제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 세 명은 경제학 이론을 발전시킨 것으로, 또한에 투자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그리고 그중 하나는 이를 날린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들로부터 훌륭한 투자자가 되는 법,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대체로 투자에 실패하는 이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1. 데이비드 리카도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는 21살에 종잣돈 800파운드를 들고 투자를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30년 후인 1823년 세상을 떠날 무렵, 그의 자산은 675,000 내지 775,000파운드 상당이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매년 28,000파운드의 이자 소득을 누렸습니다. 이렇게 부자로 산 경제학자는 없었습니다.

리카도는 일찍이 국채 중개에서 나오는 차익 거래로 재산을 불렸습니다. 그럼에도, 역사학자들은 리카도가 내부자 거래와 주가 조작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의 수익을 냈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리카도가 자기 거래 기법을 글로 남지긴 않았지만, 동료 투자자들은 그가 두 가지 원칙을 반드시 지켰다고 말합니다. 첫째, “가급적이면 손실이 커나가지 않게 한다.” 둘째, “가능한 한 수익은 계속 커나가게 놔둔다.”

앞서 말한 것처럼, 리카도의 투자 경력은 국채 중개인으로 활동하면서 큰 도약을 이루게 됩니다. 1800년대 초 나폴레옹 전쟁 동안, 영국 정부는 증권 거래소를 통해 전쟁 자금을 조달하고 있었습니다. 국채 입찰에 성공하면 상당한 차익 거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리카도는 입찰에 아주 능숙했기 때문에 1811년에서 1815년까지 전쟁 기간 동안 모든 국채를 얻는데 성공합니다.

1815년 6월 14일 이윽고 마지막이자 최대 규모(3600만 파운드 상당)의 전쟁 자금 조달용 국채 입찰이 진행되었습니다. 워털루 전투가 벌어지기 4일 전이었습니다. 그 규모와 전쟁 결과의 불확실성 때문에 입찰 가격은 아주 낮았습니다. 4명이 더 입찰에 참가했지만, 여기서도 리카도가 승리합니다.

리카도는 가격이 폭락한 국채를 배짱 있게 보유했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도박이었습니다. 다른 다소 소심한 투자자들은 워털루 전투 전 일찌감치 팔아버렸지만, 리카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웰링턴 장군이 워털루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채 가격은 하늘 위로 솟구쳤고, 리카도는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선데이 타임스에 실린 리카도의 부고 기사(1823년 9월 14일)에서는 워털루 전투로 리카도의 재산이 100만 파운드를 넘어섰다는 소식은 루머라고 전했습니다.

리카도가 영국 내 179명의 백만장자 중 한 명에 들지는 않았지만, 자산이 50만 파운드 이상인 338명 중 한 명이건 분명했습니다. 이후 리카도가 경제학으로 관심을 돌려 비교 우위 이론을 개발하고, 국제 무역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한 것은 거의 우연이었습니다.

리카도에게서 투자자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1.가급적이면 손실이 커나가지 않게 한고, 가능한 한 수익은 계속 커나가게 놔둔다.

2.자신이 아는 분야에 집중한다.

리카도가 내부자 거래로 돈을 벌었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그가 자신이 우위가 있는 분야에 집중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2. 어빙 피셔


어빙 피셔(Irving Fisher)는 1920년대 산업 부흥기 주식 시장에 상당한 투자를 했습니다. 수익을 키우기 위해 엄청난 레버리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시장이 계속 상승하면서, 그의 누적 자산은 1천만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레버리지의 위험은 시장이 하락할 때, 역으로 손실을 배가시킨다는 것입니다. 1929년 주식 시장이 붕괴하자, 피셔 또한 함께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시장이 붕괴된 직후인 1929년 10월, 피셔는 주식 시장이 영원히 하락하지 않을 고원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선언합니다. 그 다시 몇 주 후, 전국 신용조사계 연합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시장의 펀더멘탈은 변한 것이 없으므로, 이번 폭풍을 견뎌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피셔가 경제 지표 개발의 선구자였고(“The Index Number Institute”를 통해 주간 및 월간으로 경제 지표를 발표했음), 따라서 당시 미국 경제에 불균형과 취약성이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세상을 떠나고 남긴 자산은 약 60,000달러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케인스에게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1.확증 편향이 빠지지 말라.

피셔는 시장이 붕괴되고 있는데도 시장 반등을 주장하는 글을 많이 써냈습니다. 그는 자존심이 강했기 때문에, 자기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아가 너무 상승장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장이 급락하자 인지부조화가 생겼던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2.투자의 동기를 이해하라.

피셔가 끊임없이 수익을 추구한 이유는 단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3.데이터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더 나은 투자자는 아니다.

3. 존 메이너드 케인스


리카도와 피셔처럼,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도 투자자였습니다. 1936년 자산이 50만 파운드 이상이었지만, 너무 많은 레버리지를 사용한 결과 1937-38년 경기 침체기에 파산을 겪었습니다. 이후 1946년 세상을 떠날 당시 그의 자산은 40만 파운드 상당이었습니다.

케인스는 시장의 투자자들을 면밀히 관찰했고, 그 유명한 투자자들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란 말을 남기게 됩니다. 그는 야성적 충동이란 “정량적 편익에 정량적 확률 곱하여 가중 평균한 결과가 아니라, 행동하지 말아야 하는데 행동하고 싶은 즉흥적 욕구”라고 정의합니다.

그는 투자자들을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전문 투자자는 100매의 사진 가운데서 가장 얼굴이 아름다운 6 명을 선택하되, 그 선택이 투표자 전체의 평균적인 선호에 가까운 사람에게 상품이 수여되는 신문 투표로 비유할 수 있다.

이 경우 각 투표자는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얼굴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투표자들의 취향에 가장 잘 맞을 것으로 생각되는 얼굴을 선택해야 하는데, 경선에 참가한 투표자들은 모두 같은 입장에서 임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의 최선의 판단으로 진실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선택하는 것도 아니며, 더구나 평균적인 의견이 가장 아름답다고 진정으로 생각하는 얼굴을 선택하는 것도 아니다.

평균적인 의견이 어떤 평균적인 의견을 기대하고 있는가를 예견하는 것에 우리의 지성을 집중시키는 제3차의 영역에 우리는 도달해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제4차, 제5차 및 그 이상 고차의 수단을 부리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따라서 케인스에게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투자란 단순히 데이터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투자자들이 그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그리고 모든 투자자들이 다른 투자자들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해석하는 것이다.

자료 출처: Peter Sainsbury, “What three of the best economists in history can teach you about investment.”

Written by pius.pius
출처 : https://steemit.com/kr/@pius.pius/3dfdv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