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초의 증권 거래소, 그리고 액티브 투자

적극적으로 주식 등을 골라 포트폴리오를 꾸려 투자하는 ‘액티브 투자(Active Investing)’와 보수적으로 보다 넓은 시장을 대상으로 ‘평균적 수익률’을 추구하는 ‘패시브 투자(Passive Investing)’의 우열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워런 버핏은 일반 개인 투자자라면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사람마다 개성도, 능력도, 자본도 다 다르기 때문에 “꼭 어느 방식으로 투자해야 한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액티브 투자의 기원은 언제였을까요? 믿기 힘들겠지만 2,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로 고대 로마에도 증권 거래소가 있었고, 거기서 주식을 서로 사고팔았던 액티브 투자자들이 있었습니다. 다음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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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룸 로마눔: 최초의 증권 거래소>
최근 몇 년 동안, 언론의 경제란은 패시브 투자의 부상과 액티브 투자 산업의 ‘죽음’에 대해 대대적으로 다뤄 왔다. 패시브 펀드의 저렴한 수수료, 액티브 펀드의 저조한 수익률 및 상장 지수 펀드(ETF)의 부상으로 비롯된 이런 변화는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왔지만, 중요한 의미가 있다.

패시브 투자의 규모와 속도는 지난 10년간의 자금 흐름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모닝스타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말 당시 전체 주식형 뮤추얼 펀드 및 ETF 자산 중 약 45%가 패시브 투자 형태였다. 2007년에는 20%에 불과했었다.



<점진적으로, 하지만 분명하게>
이런 와중에서 액티브 투자 산업이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투자자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위험과 경쟁 그리고 평균에 머물길 거부했던 것이 인간의 본성이었다. 인간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이러한 본성이 가져올 결과가 긍정적일지, 아니면 부정적일지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패시브 투자가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패시브 투자가 액티브 투자 산업을 대신할 것이라는 시각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극적인 대조.>
실제 액티브 투자의 역사는 2,300년 동안 이어져 왔고, 그 과정에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곤 했었다. 패스브 투자의 부상 또한 그런 도전 중 하나일 뿐이다. 오늘날의 투자 투자 환경을 볼 때, 패시브 투자의 맹공 앞에서 액티브 투자가 어려움을 겪게 될 테지만, 이 폭풍을 이겨낼 것이 분명하다. 지난 수천 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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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투자의 역사는 로마 콜로세움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이 웅장한 건축물이 세워지기 300년 전인 기원전 3세기의 일이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기업에 돈을 댄 투자자자들이 개인으로서 모든 법적 책임을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로마 원로원은 투자자들의 집합체인 기업이 스스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기업의 이름으로 계약을 하고, 돈을 빌리고, 파산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법인의 시대가 들어선 것이다. 로마에선 이런 권리를 가진 기업을 ‘소시에타스 퍼블리카노럼(societas publicanorum)’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 기업의 주식 거래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고대 주식 시장의 설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퍼블리카니(publianci)’와 ‘소시에타스 퍼블리카노럼(societas publicanorum)’의 역할을 알아야 한다.



<세금을 징수하는 퍼블리카니>
광대한 지역을 지배했던 로마 제국에서는 많은 공공 서비스를 다양한 지역 사람들에게 위탁해야 했다. 이런 위탁자를 ‘퍼블리카니(publianci)’라고 불렀고, 로마 경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장 중요한 퍼블리카니 중 하나가 바로 세리이었다. 세금 징수는 아주 수익성 높은 사업이었기 때문에, 세리가 되기 위해서는 경쟁이 치열했다.

당시 로마에서는 세리가 담당 구역의 예상 세금을 미리 정부에 납부했다. 때문에 세리는 나중에 해당 구역에서 징수한 세금 중 남는 금액을 자기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다. 정부 측에서도 세리가 미리 납부한 세금을 다른 이들에게 빌려주고 이자 수입을 챙겼다.

이렇게 세금을 징수하는 등의 일종의 ‘사업’이 기업화되었고, 곧 소시에타스 퍼블리카노럼(societas publicanorum)’이라 불리게 되었다. 소시에타스 퍼블리카노럼은 주식과 주주가 있었다는 점에서 현대의 기업과 구조적으로 비슷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소시에타스 퍼블리카노럼의 주주도 등급이 있었다. 로마 정치인들이 소위 ‘대주주(magnae partes)’였고, 일반 투자자들은 ‘소액 주주(particula)’였다. 현대의 우선주와 보통주처럼 주식에도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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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역사학자 ‘폴리비우스’에 따르면, 거의 모든 로마 시민들이 소시에타스 퍼블리카노럼의 주식을 보유했다고 한다. 카스토르 신전 부근의 그 유명한 ‘로만 포럼(Roman Forum)’에서 다양한 트레이더들이 주식을 투기하고 거래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고대 거래소의 잔재>
오늘날의 시장 참가자들과 갖고 있던 수많은 문제와 걱정들이 그 2천여 년 전 당시에도 존재했었다. 당시 저명했던 철학자 ‘시세로’는 “주식 가격이 너무 높다.”라고 경고하면서, 시장 가치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고 한다.

시세로의 말은 소시에타스 퍼블리카노럼의 주식이 그 가치와 가격을 바탕으로 매매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액티브 투자자들이 사용하는 전략과 같은 것이었다는 말이다.



<시세로의 연설 모습>
그리스도 이전 시대에도 액티브 투자자들은 면밀한 조사를 받았다. 시세로는 보수적인 사람들이라면 도박이나 마찬가지인 주식 거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마치 오늘날 단순하고, 위험이 낮은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라는 말과 비슷하다.

오늘날, 패시브 투자의 ‘가격 발견(price discovery)’ 효과에 대해 많은 액티브 투자자들이 경고하고 있다. 로마인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없었을지 모르지만, 성공적인 거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속함과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기원전 3세기 로마 제국 전역은 복잡한 체제를 이루고 있었고, 포럼의 증권 거래소에서 활동하던 트레이더들에게 각종 금융 정보와 자료들이 빠르게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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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로마 제국은 종말에 이르렀고, 이 최초의 증권 거래소도 제국의 몰락과 함께 사라져갔다. 제국이 무너진 후, 기독교와 기타 종교의 부상으로 로마 포럼과 비슷한 시장 형성을 막았기 때문이다. 이후 유럽에서 나타난 봉건 제도와 종교법으로 고리대금업이 금지되었고, 로마 시대 성공의 기반이었던 기업가와 자본주의 정신이 사라졌다.

하지만 액티브 투자자들의 시장은 곧 다시 나타났다. 로마인들이 당면했던 문제들이 액티브 투자자들의 역할을 일시적으로 막았던 때도 있었지만, 액티브 투자 산업을 뿌리뽑을 정도로 영향이 크지는 못했다.

알려져 있는 것처럼, 초기 주식 시장은 1300년대 이탈리아에, 1600년대 앤트워프에서, 그리고 이후 암스테르담과 영국에 세워졌다. 이 시기에 액티브 투자는 번성했고, 이미 천년도 더 오래전에도 존재했던 투자 개념과 관행이 다시 한 번 두각을 나타냈다.

오늘날 액티브 투자는 또 다른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패시브 투자 상품들이 액티브 투자 산업을 위협하고 있지만,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에도 역풍에 이겨낸 것처럼, 액티브 투자 상품이 액티브 투자 산업의 운명을 결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기원전 3세기 이후로 비슷한 위협을 잘 견뎌왔던 것처럼, 오늘날의 퍼블리카니들은 인류는 앞으로도 계속 ‘로마인들처럼 행동할 것’이라는 사실에 돈을 걸 것이고, 액티브 투자를 통해 시장 평균을 넘어서려고 노력할 것이다.

Written by pius.pius
출처 : https://steemit.com/kr/@pius.pius/3hskjk